
어제 자정이 가까운 밤,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느 문 닫은 점포의 계단에 앉아 있던 한 노숙자분을 봤습니다. 술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죽어버린 것인지 아무런 미동도 없이 고개가 푹 꺾인 채 불편한 자세로 널브러져 앉아 있었습니다. 퀴퀴하고 때에 찌든, 두꺼운 점퍼 그리고 너무 오래 씻질 못해 연탄색깔이 되어버린 얼굴, 신발을 신지 못한 채 퉁퉁 부어버린 맨발, 윤기를 잃은 채 산발이 되어버린 덥수룩한 머리카락...
그의 모습에서 극단의 좌절이 느껴졌고 임박한 죽음에 대한 체념이 느껴졌습니다. 버려진 짐승보다 못하게 전락해버린 한 인간의 충격적인 모습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습니다. 그리고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납세자, 종업원, 가장... 어느 것에도 쓸모가 없어 용도폐기된 부속품 인간의 참담한 최후에 대해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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